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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인의 삶에 깃든 고귀한 ‘흥(興)’

한국 백세인의 당당한 삶
장수의학자 박상철 교수의 백세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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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헬시에이징 뉴스 (AI 기반 제작)

백세의 파고를 넘어서며 살아오신 어르신들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는 여정은 비록 몸은 고단할지라도, 그분들을 마주하는 순간 밀려오는 기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묘한 감동 덕분에 마치 청량제를 마신 듯 피로가 씻겨 내려가곤 합니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삶의 굽이마다 곁에 두었던 가락이 있느냐고 여쭈면, 처음에는 그런 것을 모른다며 손사래를 치다가도 이내 요청을 반기며 소중한 소리를 들려주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대응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영남지방 어르신들은 사양하는 편이 많지만, 호남지방 어르신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꺼이 마음을 열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구례군 토지면의 마을 꼭대기, 세월의 풍파에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토방 집에서 홀로 텃밭을 일구며 사시는 102세 김화유 할머니와의 만남은 가슴 벅찬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할머니는 혼자 지내는 독거노인임에도 전연 흐트러짐 없는 매무새로 당당하게 삶을 꾸려가고 계셨으며, 뒷마당과 옆 마당 텃밭에 콩과 고추, 상추와 깨 등을 정성껏 키우며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은 나이가 들어도 스스로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책임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고귀한 본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인지능력은 물론이고 악력과 보행 테스트에서 보여주신 힘찬 기운과 껑충 뛰어오르는 몸짓은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귀에 대고 큰 목소리로 질문을 하는 조사원에게 "나 귀 안 먹었어!"라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시는 모습에선 세월을 이겨낸 명료한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누가 가장 보고 싶으냐는 물음에 딸과 사위, 그리고 먼저 떠난 영감님까지 모두가 그립다며 나직이 진심을 전하던 할머니는, 노래 한 자락을 청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달아달아 밝은 달아’를 시작으로 ‘아리랑’, ‘진도아리랑’, ‘농부가’를 메들리로 엮어 끊임없이 들려주셨습니다. 전국 노래자랑 사상 최고령자로 뽑히셨던 그 화려한 이력이 충분히 납득될 만큼 할머니의 흥은 깊고도 진했습니다. 고독을 일구어 노래로 피워낸 할머니의 가락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이가 세상에 건네는 가장 따뜻하고도 흥겨운 위로였습니다.


기고자 /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출처 : 헬시에이징 뉴스(https://www.healthyagingnews.kr)